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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nogun
자살보다 sex hit: 76
 Company
 (주)자음과모음
 Writer
 무라카미 류
 Translator
 한성례
 

그래.
무엇보다 이 책은 자극적인 제목에 가장 먼저 끌렸다.

우연찮게 내가 좋아하는 하루키와 이름이 똑같은 무라카미 류의 에세이집이다. 1976년 데뷔때 부터 2002년까지 여기저기에 기고한 글들을 뭉뚱그려 한 권의 책으로 발표했다.

제목이 가져다주는 감상처럼 극과 극의 소재가 왜 제목이 저 따위인지 확답은 주지 않지만, 무라카미 류의 인생사(?) 를 기반으로 재미있게 글을 쓴 느낌이다. 그래서 굉장히 잘 읽히고 일본 사회의 이면도 어느정도 감지할 수 있다. 지금보니 자극적인 제목은 거의 낚시성이고 개인과, 나아가 국가 전체에 대한 성토들이 꽤 있어서 의식있는 작가구나 싶었다.

예전에 국내의 어떤 평론가였나 학자였나 하는 사람이 했던 말이 있다.
"일본을 보면 한국의 10년 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의 그네들을 보고 나쁜 점들은 버리고-고치고, 좋은 점들만 받아들여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이 쓰여진 근 10년 전의 일본이 지금의 한국과 너무 닮아있다는걸 느꼈다. 그래서 한편으로 '우리도 저렇게 망해가려나..' 라고 생각했다(딱히 일본이 아직 망한건 아니지만).

'이런걸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여성혐오자같은 텍스트도 왕왕있긴 하지만
그의 생각에 100% 동의하기보단 90%정도 공감한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고급지지만 허름한 바(bar) 의 구석진 곳에서 남루하지만 버릇없지 않은 차림새의 무라카미 류가 진을 마시는 모습이 떠오르는 책이다.

시종 시니컬하고 제멋대로인 글쓰기를 아주 잘 보여주는 에세이(혹은 연애담) 정도 되겠다.
앞으로 그의 유명한 책들을 우선적으로 찾아 보게 될 지도.

국내에 한때(아마 지금도 꾸준히) 무수히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지금은 없어진 난지도의 쓰레기 더미들처럼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던(정말 다음날이면 신간이 나오고 그랬었다) 시기가 있었는데, 그런 낭비용 계발서보다 몇 배는 나은 책이다. 성인들의 자기 계발서라고 할까. 물론 습성이나 행동양식, 생활패턴 따위가 이미 고착되어버린 성인들이 이 책을 보고 한순간에 바뀔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시간낭비-돈낭비인 자기 계발서 쪼가리들보다 훨씬 얻을게 많다. 이 책은.































『영원한 애인에게 : 퍼펙트 미스트리스

"두고 봐, 온 세상의 은행 금고를 모조리 털어버릴 테야. 그럼 나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겠지. 어때, 그럼 당신은 그 돈으로 뭘 하고 싶어? 뭐든지 다 해주겠어."
기억하고 있어? 나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독립해서 싱가포르에 사무실을 열고 공사채 투자로 큰 돈벌이를 해보겠다고. 돈을 많이 벌게 될 텐데, 그럼 당신은 뭘 하고 싶어, 라고.
딜린저의 창녀 애인처럼 리카도 허풍 치는 나를 따스하게 바라보면서 똑같은 말을 했지.
"그래요, 다시 당신과 춤추고 싶어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오늘은 이만 쓸게.』



『사랑스러운 여자와 사랑스럽지 않은 여자

약은 여자에게는 결정적인 매력이 없다. 여기서 결정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남자로 하여금 결심하도록 만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약은 여자의 잔꾀는 남자로 하여금 다른 중요한 것을 버리면서까지 그 여자에게 자기의 전부를 바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경계부터 하게 만든다.』



『추락하고 싶어, 라고 그 여배우는 말했다

괜찮은 남자는 죄다 결혼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주변의 재능 있고 힘 있는 남자는 모두가 처자식 딸린 유부남이다.
첫 번째로 괜찮은 남자는 섹시한 남자인데, 당연히 인기가 많아서 여자와 만나기 쉽다. 두 번째로 괜찮은 남자는 애정이 많은 남자로, 아무리 불행한 처지에서 자랐다 해도 지인을 친절히 대하고 쉽게 여자를 버리지 않는다. 세 번째로 괜찮은 남자는 항상 밖으로 나도는 경향이 있어 오히려 누구보다 돌아갈 곳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다. 네 번째로 괜찮은 남자는 성적인 면에서 정상인 경우를 말한다.
서른다섯 살을 넘어서도 독신인 남자는 대부분 비정상이다.
결혼하지 않고 사는 여자들 중에는 멋진 여자들이 많다. 바꿔 말하면, 가정주부는 이제 여자가 아니다. 다른 남자의 전용 가정부이며 누군가의 어머니이다.
결혼하지 않았으면서도 멋진 남자는 별로 만날 수 없다. 게이는 이 문제에서 별개의 존재니까 논외로 하자.

(중략)

사실 남자는 결혼을 거부하고 싶다. 아무리 사랑하는 여자라 할지라도 우선은 결혼하지 않고도 계속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에는 여자와 결혼을 한다.
왜 그럴까?
제도 때문이다. 제도를 바보 취급해서 안된다. 제도는 강력하다. 이 세상 일 중에 거의 대부분이, 100퍼센트에 가까운 비율로 제도를 지지하고 보완하는 장치로서 존재한다.
제도에 대항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특히 남자의 경우에는 백전백패한다. 그러나 제도는, 당연한 소리이지만, 거짓말이며 환상이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필연성 같은 것도 없다. 동물들 사이에는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에 비해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제도를 만들어냈다.

(중략)

제도는 일신의 안전을 보장해주지만 지루하고 피곤하다. 그래서 쾌락도 없다.』



『섹스에 필요한 것은 체력이다. 사랑이 아니라

'섹시한 여자란 어떤 여자인가?'같은 특집 기사도 많다. 언젠가 재미있는 우연으로 <리(lee)>, <위드(with)>,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과 연이어 인터뷰를 했는데 주제가 모두 '남자에게 섹시한 여자란 어떤 유형?'이었다. 완벽하게 못생긴 여자 프리랜서 기자가 인터뷰를 하러 왔다는 점도 공통점이었다(아아, 나는 이렇게 해서 많은 여성 자유기고가들을 적으로 만들고).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섹시'라는 말을 쓰는 여자는 섹시하지 않다.

(중략)

하지만 전쟁과 섹스에 관한 내 입장은 이미 정해져 있다. '좋은 섹스는 전쟁을 방지한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순한 이야기이니까.
여자 얼굴에 대고 사정하는 행위(이라마치오)를 해보지 않은 남자라도 한번쯤 신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어질 만큼 참 좋았다고 느껴지는 섹스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정욕과 낭만이 녹아든 최고의 섹스 말이다. 그런 멋진 섹스를 즐기고 사정한 다음에 여자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전쟁을 하리라 마음먹는 남자도 있을가? 동물학자 로렌츠 박사의 지적을 기다릴 것도 없이, 그럴 경우, 공격 충동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다음 문제는 '좋은 섹스'의 조건에 달려 있다. 필요충분조건이다. 이 모두를 다 갖추기는 어렵다. 그러나 필요조건이라면 금방 말이 된다. 그것은 '체력'이다. '사랑'이 아니다. 아무리 사랑이 있어도 간경변 발작 중에는 섹스를 할 경황이 없다. 흔히 "사랑만 있으면 나이 차이 같은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하지만, 이 말은 체력과 사랑을 바꿔서 잘못 말한 것이다.』



『모든 남자는 소모품이다 part.1

그러면 소모품인 남자는 어찌하면 좋을까? 여자를 이길 방법은 없을까? 그 대답이야말로 인류 전체의 모든 역사이다. 예술, 경제, 정치, 전쟁, 종교, 법률, 문학, 건축, 이러한 역사들 모두가 남자들의 '모성에 대항하는 반역'의 역사이다.
그래서 여자를 이겼을까? 이기지 못했다.』



『못생긴 촌뜨기와 가난뱅이의 연애는 모두에게 민폐다』



『사회성이 연애를 만들어낸다

스톡홀름 증후군...... 남성 동지 여러분, 여자는 감금당하길 원한다는 것을 알아두시길. 그러나 감금시키는 일에 성공하여 사랑을 잘 키웠다 해도, 금방 도망치고 싶어 하는 여자도 많다는 것도 알아두시길.』



『호주의 도시는 고요하다. 왜일까?

그런데 서양인들은 단체로 몰려오는 일본인 신혼여행 커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싶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단둘이서 가족을 이뤄나가는 새로운 출발을 다지는 여행을 단체로 몰려가다니, 어떤 정신 구조라고 생각할까? 그렇다, 나는 일본인이니까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도 정말 거기까지는 모르겟다. 예를 들어 만일 내가 신혼여행을 간다면 절대로 단체 여행은 가지 않을 것이고, 물론 단체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다. 여행 가이드가 옆에 붙는 것도 싫다. 아무튼 둘이서만 계속 함께 지내겠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란, 그것 자체만으로도 몹시 지치는 일이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타인에게 보여라

국내에 오래 있으면서 느끼는 점은 어이없을 만큼 이상한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잡지 같은 주요 매스미디어가 제대로 된 정보를 전혀 내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오해받겠구나). 이런 현상이 도에 지나쳐 기분마저 나빠진다. 미디어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이 당연한 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본의 매스미디어는 정보를 있는 그대로 내보내지 않고 내용을 변질시켜서 전한다.
뉴스프로그램 진행자는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해놓고서도 정보를 제대로 내보내지 않았음도 알려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러시아 사회의 혼란상을 전할 때 그것이 일본인들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듯이 내보낸다. 그러면서도 상세한 부분까지 되도록 자세히 보여준다. 그러면 시청자들은 우리 자신의 문제가 아니니까, 아, 그런 일이 있었나 하고 곧바로 잊어도 되는 테마로 여기고는 흘려듣는다.
반대로 자국 일본에 대해서 만든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는 이렇다. 예를 들어 노인 문제나 불황에 따른 실업과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불륜을 그릴 경우,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일본은 모든 문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관점이 들어가 있다. 때문에 이런 것들이 직접적인 정보로는 전해져오지 않는다. 너무 매끈해서 걸리는 데가 없다 보니 그것을 보면(들으면, 읽으면) 물론 놀라지도 않고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이처럼 제대로 된 정보가 들어 있지 않은 영상과 활자의 홍수를 무의식중에 보고 읽으며 자라온 세대들은 기본적으로 미디어를 신용할 수 없게 된다.
또 오해받을 것 같다.
매스미디어를 신용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신문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말하자면 어떤 정보다 어떤 종류의 추상화 작업을 거치며 활자나 전파를 타고 강화되고 다시 미디어에 의애 이동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신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일반 대중들이 아예 그 자체가 필요하지 않도록 해놓았다는 이야기이다.
하우스 뮤직을 예로 들면, 매스컴에서는 하우스 뮤직을 이것저것 뒤섞는 리믹스 중심의 스튜디오 작업만으로 끝나는 그런 음악과 똑같이 취급한다. 영어도 못하면서 일본인이 랩 종류의 음악을 들어서 뭐하겠다는 거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젊은 무리들은 가사 같은 것을 유심히 듣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외국의 뛰어난 힙합이라든가 하우스 음악을 일본에서 범람하는 쓰레기 같은 팝과 혼동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가사를 음악으로서 듣고 있지 않다는 큰 공통분모가 있지만 두 음악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하우스 뮤직을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일부 뛰어난 뮤지션들은 처음부터 절망에서 시작했다. 그에 비해, 일본의 뮤지션들은 대부분 그저 단순하게 비교해서, 절망적으로 잘하지도 못하면서, 절망적으로 머리가 나쁘고, 절망적으로 오만하다는 차이가 있다.

(중략)

그런데 요시모토 바나나와 같은 기술도 없고 해외의 하우스 뮤지션과 같은 엄밀함과 절제도 없는 다수의 젊은 사람들은 '절망' 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당연하게도 제대로 처리할 리가 없다.
체력이 없는 무리는 자신의 '상처'라도 소중히 여긴다고 할까. 그 외에는 중요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저 자신이 받은 상처만을 애처로워한다. 타인에게 드러내 보일 만한 물리적인 것은 오로지 그것밖에 없다. 오체만족으로 살아 있는 한 '상처'자체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상처(내면이라 해도 좋다. 같은 말이지만 결국은 환상이다)를 소중히 여기는 것 외에는 다른 중요성을 갖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면은 신비화되고, 여기서 자기애가 생겨난다.』



『내가 보고 싶은 거라면 전 세계가 보고 싶은 것이다. 이 생각에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내부조정' 이 나라의 역사상 인물이 했던 일이라면 그것뿐이다

역사를 통해 배울 게 없는 국민이 일본 국민 말고 또 어디 있을까? 미야모토 무사시라든가 사카모토 료마가 대체 얼마만큼의 역할을 했다는 것인가? 칼을 휘두르거나 누구와 누구 사이의 조정 외에는 한 일이 없다. 두 사람 다 일본어밖에 할 줄 몰랐으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적인 조정이나 번역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지금 살아 있다 해도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녀의 상담에도 응해줄 수 없는 것이다.
'상처'가 상품이 되고, '상처의 치유'도 상품이 된다. 모두가 있지도 않은 상처를 찾아내어, 상처에 기대어 의지를 포기하며 정체성을 찾는 그런 환상을 요구한다. 전화를 해왔거나 영화, <교코>에 응모해준 일부 기분 나쁜 여자애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가 나서서 도와주고 구해줄 거라는 생각은 아예 그만두라고. 인간이 다른 사람에 의해 정말로 구원받는 경우는 등산이나 항해 시의 사고에서와 같은 물리적인 구출에서만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외에는 추상화된 정보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 스트레스로 죽는 사람은 드물었다

"원조 교제를 하는 여고생들은 이렇다. 그녀들은 자각은 없으면서도 지금의 일본 사회를 혐와하고 거부하며, 샤넬이나 구치로 일컬어지는 명품에 더 가치를 두는 것으로서 일본적인 도덕의 바깥에 존재하려 한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칭하는 sm이라는 성적인 게임에 생활과 정신을 의지한다. 그리고 일본적인 공동체에 대항해서 no라고 말했던 이전의 성매매업에 종사하던 여자들보다도 지금의 여고생 쪽이 더 무기적이고 수치심이 없기 때문에 훨씬 더 현대를 상징하고 있다."』



『16세 소녀는 앞으로도 66년이나 더 살아야 한다

헤아려보니 나는 30명가량의 여고생들과 만났다. 이 지역의 명문 사립고에 다니는 여고생 30명 중에서 내 소설의 팬은 단 두명뿐이었다. 이 두 학생은 아주 특별했다. 한 명은 세상을 저주하는 보디 피어서(body piercer)이고, 또 한 명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고, 4개 국어를 구사하는 유학파였다.
평범한 학생들은 내 소설을 읽지 않았다.』



『국가와 개인의 관계만으로는 더 이상 인간을 지탱할 수 없다

국가적인 목표보다는 개인의 목표가 소중하니까 좋은 대학이나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그 말은 이제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만으로는 개인의 자존심을 지킬 수 없다고 제대로 알려주면, 아이들이 꽤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런 관점에 서 있지 않다.
어른들 대부분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자기 인생을 써왔다. 그러니까 사회 시스템이 개인을 받쳐 주지 못하리라는 자각은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근대화가 끝났음을 알려주지 않는다. 오래전에 이미 개인의 시대가 시작되었는데도 그조차도 숨기려한다.
"저는 필사적으로 공부해서 도쿄대학에 들어갔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죽어라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았고, 졸업한 후에는 재무성의 관료 공무원으로 취직하여 청렴결백하게 열심히 일하면서 오로지 한 길만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일밖에 모르고 아내는 돌아보지 않았다고 해서 정년 후에 이혼을 당했습니다. 게다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며 자식들도 가까이해주지 않습니다. 저는 분명 인생을 잘못 살았습니다. 이제는 제 욕망에 따라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어, 다시 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만 제 경우는 이미 늦었습니다. 즐겁게 살기 위해 무언가 찾아서 훈련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은 저 같은 인생을 살지 말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도쿄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모든 충실감이 다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이 가장 생생하게 힘이 솟는지, 그걸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던 제가 바보였습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어른들은 모두 저와 같은 인생을 걸어갑니다. 그런데도 저처럼 정직하게 털어놓지 않습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절대로 속지 않게 해주세요. 재무성에 들어가도, 미쓰비시 은행에 들어가도, 아니면 세상이 신용할만한 직장이라고 알려진 집단에 속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존경받고, 여성이 따르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여러분의 아이들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부모나 교사, 여러 어른들에게 속지 말아주세요. 앞으로의 시대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방면의 전문가가 되는 사람이 이끌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물학자 시턴이 동물을 좋아해서 그 방면에 평생을 바치고 곤충학자 파브르가 곤충을 좋아하여 곤충 연구에 온 힘을 기울였던 것처럼, 밤을 새워도 피곤하지 않은 그런 일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인생을 충실히 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라는 거지요. 사회 시스템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바치는 노예 같은 일생을 보낼 것인지, 비록 사회적으로 성공하진 못했어도 충실한 일생을 보낼 것인지, 이 모든 것은 어렸을 때 정해집니다. 이 일본 사회는 당신들을 노예로 만들려고 거짓말만 계속 되풀이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속지 말아주세요."
이런 말을 누군가가 쏟아놓기 시작하면, 잔뜩 무거운 짐을 짊어져 짓눌려 있던 아이들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사실 누군가 그렇게 깨달았음에도(깨닫지 못했는지도 모르지. 아, 정말 깨닫지 못했을 거야) 밝히지 않았다면 옳지 않다.』



『신뢰할 수 없는 인간이 내 주변에서 사라졌다는 안도감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은 우리 일본인의 마음속 깊이 침투되어 있다. 자신이 눈치챈 것, 알고 있는 것, 느낀 것을 굳이 전하지 않아도 상대가 무언가 눈치로 알고 있다고 여기고는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버린다. 내놓고 솔직하게 말을 했다가 오히려 제대로 돌아간 적이 없었던 탓도 있다.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소통 방식은 부모와 자식 관계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기능이 마비되게 만들어버린다.』



『현재 '사회 시스템'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어디에도 없다

10년 후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불안해지긴 하지만 어떻게든 지금보다 충실하게 만들고 싶다는 매우 건전하다. 10년 후의 자신을 그려보면서 불안감이 전혀 없을 리 없다. 불안감이 없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그러나 매스미디어에서는 아이들이 장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아주 당황한다. 일본에서 개인적인 불안은 지금까지 거의 터부시되어왔다. 사회 시스템에 의지하기만 하면 대부분의 불안은 해소되었다. 원래 불안이라는 것은 왜 생길까. 일반저인 불안은 생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데서 발생한다.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은 확실히 불안감을 낳는다. 바로 최근까지 일본 사회 구석구석에 늘 존재해왔던 사회 시스템이라는 공동체는 대부분의 불안을 해소시키는 기능을 해왔다. 공동체의 구성원은 병이 나면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식량과 돈이 없을 때는 빌릴 수 있었다. 취업이나 결혼 알선도 해주었고 무엇보다 고독하지 않았다.

(중략)

구성원의 불안을 해소한다는 것은 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여서, 개인적인 불안을 안고 있다고 알려지기만 해도 공동체로부터 소외당한다. '사회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공동체는 개인의 불안에 대응할 수가 없다. 사회 시스템의 구성원으로 속해 있으면서 불안을 안고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그러한 '사회 시스템'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구성원이 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불안이 사라진다는 공동체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개인적인 불안을 안고 있는 것만은 터부인 채 남아 있다. 아이가 불안하다고 말하면 부모는 그것만으로도 걱정한다. 개인이 어떤 불안을 안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 일치가 정착되지 않는 한, 사회 시스템이라는 환상을 계속 기능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의미 없는 스트레스를 계속 받게 될 것이다.』



『지금, 일본의 소녀들에게 기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고 집중력도 발휘되며 지속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것을 필사적으로 찾고 발견해낸 뒤 그 분야의 기성세력에 도전하여 사회에서 인정받고 지위를 단단히 한다는 것이 전 세계의 상식이다. 그러나 이 나라 일본에서만은 그렇지 못하다.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어떤 직종이라야 주위에 잘 어울릴 수 있고 세상에 대한 체면도 서는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노력한다.
그러고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기란 아주 쉬운 일이며, 그런 짓을 필사적으로 하고 있으면 제대로 된 인간이 되기 어렵다, 좀 더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말을 어렸을 적부터 줄곧 듣게 된다. 그 경우의 고생이란 코너스가 해온 강도 높은 연습과 같은 것이 아니라, 한 직장에 오래 머물기 위해 인내의 방법을 배우는 그런 시시한 것이다.
그래서 무의미하게 고생한 사람이 인기가 많다. 인기인도 고생담을 즐겨 말한다. 얼마나 건강하지 못한 사회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른이 되기 전에 '자신에게는 어떤 재능도 없다'라며 포기해버리고서는 그런 건강하지 못한 사회로 들어간다.
자신에게는 반드시 무엇인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자. 라는 의지가 이미 재능의 일부분임에도 그것을 포기해버린다.
재능이 없다고 억지로 결정하고서 살아가는 것만큼 쉽고 안락하며 지루하고 시시한 것은 없다.』



『연애는 열대병을 닮았다

늘 말해왔지만 일본에서는 학생 시절에 신나고 요란하게 마구 놀고 나서, 졸업 후에는 의사나 관료를 노린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이것은 바로 연애가 공동체에 전적으로 패배했다는 의미이다.』



『"여자는 약하니까"가 더욱 여자를 불행에 빠뜨린다

여자가 조용히 남자 뒤를 따르는 것을 원하는 남자들은 대개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나 고위 공무원이며, 그들은 사회에 진출한 이후 줄곧 힘 있는 파벌의 선배들이 아껴주는 데서 안정을 취해왔다. 지금은 그런 인생의 방식이 쓸모없다고 매스컴이 되풀이하여 방송한다. 그러면서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면 좋을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런 남자들은 불안감을 힘으로 바꿀 수도 없다. 그런 남자들은 타인에 의지해 안정감을 얻으려고 한다. 그래서 사귀는 여자나 자신의 아내에게 온순함을 요구한다. 바깥 세계에서는 자신감이 없고 안정감도 없기 때문에 자신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애인이나 아내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것으로 만족감을 얻으려고 한다. 그런 남자는 폭력적으로 변하기 쉽다. 그들은 자신의 여자만큼은 자기편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 유형의 남자는 여자가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행동을 보이면 이성을 잃고 화를 내기 십상이다.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존재였던 여자가 온순함을 잃으면 그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무리해서 결혼을 안 해도 된다 명품이 좋으면 죽어라고 사들여라

불황이거나 혹은 반대로 일본 경제가 재생되었다 해도, 내가 말하는 쓸모없는 여자라는 개념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쓸모없는 여자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자립되지 않은 여자이며,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여자이다. 그런 여자는 대공황이라 해도, 반대로 지금부터 일본 경제가 기적적으로 회복된다해도, 영원히 쓸모없는 여자인 채로 남겨진다.』



『쓸모없는 여자는 거짓말을 잘한다.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한다.

예술영화 속의 쓸모없는 여자는 대부분 성격이 나쁘고 히스테리가 심하다. 그렇게 말하고 보니, 히스테리라는 말도 거의 사어가 되었다. 독자 중에도 히스테리를 모르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히스테리라는 말은 그리어로 자궁을 뜻한다. 정신의학에서는 히스테리 성격이라는 분류가 있다. 거기에 따르면, 히스테리 성격을 가진 여자들은 말투나 태도가 늘 과장되고, 연극적이고, 타인의 주의를 끌려고 애쓰며, 자신을 섹시하게 드러내 보이려고 한다. 그러나 실은 대부분 불감증이고 한다. 능력 이상으로 무언가를 해보이려고 하며, 자신을 포장하고 허영심이 가득 찬 여자라는 것이다.』



『만남 사이트에 몰입하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서가 아닐까

나는 예전의 어떤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서른 살이 넘어 미팅에 나가는 어른은 외로운 여자뿐이다. 타인을 만날 수 없는 여자는 그만큼 외롭겠지만 그것을 안일하게 미팅에서 해결하려는 것은 외로움에 야비함이 더해진다. 매력적인 남자가 미팅에 나올 리 없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금방 아는 일인데, 그런데도 미팅에 나가는 여자는 쓸모없는 여자의 전형이다. 고도의 경제성장 시대에서부터 거품 경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외로움을 내세우는 여자도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었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외로운 지금은 다만 꼴불견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극단적인 비유일지는 모르지만 자살하는 것보다는 미팅에 나가 남자를 찾는 편이 낫고, 아이를 학대하는 것보다는 전화방에서 남자를 찾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살보다 sex

'만남이란 어디서나 가능하다'라는 환상을 제공하는 것은 기업의 제품 광고를 포함한 매스미디어와 교육뿐이다. 전 국민의 30퍼센트는 그 환상을 무비판적으로 믿으며 산다. 10퍼센트 정도는 그런 것은 환상이라고 자각하여 따르지 않고 산다. 나머지는 환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우선 지금은 따를 수 밖에 없다는 느낌으로 살아간다. '반드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같은 카피는 많은 사람을 기만하기 때문에 악질적이다. '좋은 사람'의 모델 자체가 이제는 소멸되었다. 여성이 보는 '좋은 사람'의 기준은 20년 전이라면 대기업의 직원이라든가 광고회사나 방송국 등에 근무하는 남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회사원이라면 언제 해고당할지 모른다. "대기업 직원과 사귀고 있어? 부럽다" 같은 대화가 성립되는 자리는 이제는 시골 동창회뿐이지 않을까.

(중략)

외로우니까, 라는 이유로 미성년자가 매춘을 하거나 반대로 구매하는 사람들은 옛날에도 있었다. 그것은 범죄일 뿐만 아니라 위험성도 높으므로 그만두어야 한다. 그런데도 강도는 더욱 심해지고 있고, 게다가 그런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아이를 학대하거나, 궁지에 몰려 정신병을 앓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살까지 한다.
자살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런 섹스라도 즐기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자살을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월수입의 두 배나 되는 시계를 사거나, 매일 미팅에 나가는 쪽이 낫다. 자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위험도가 높더라도 섹스로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 낫다. 이것은 물론 어디까지나 대리 요법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처럼 섹스 같은 것을 대전제로 놓고서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일본 사회는 취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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